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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작성일시     |     2010-02-21 12:31:53   조회     |     3773
  제목   |     쟁점과 대안 <13호> 추모열기에 대한 또하나의 해석; 비주류 서민 대중정치의 가능성과 과제

추모 열기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

‘비주류 서민 대중정치’의 가능성과 과제



정상호(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1. 추모열기와 ‘비주류 서민 대중정치’


너무나 근접한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적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연구자로서는 예측만큼이나 두려운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5.23 서거는 사건 자체보다도 그것의 파장이 장대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역사적 사건’(historical events)으로 발전하고 있다.


5.23 서거가 역사적 사건인 까닭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에게서 변함없이 추앙받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추모인파를 단 일주 일만에 압도하였다는데 있지 않다. 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그 하루를 경계로 극적으로 반전되었다는 데 있지도 않다. 그것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의 가능성을 비추어 준 그의 메시지와 이에 화답하였던 시민들 사이에 이루어졌던 은밀하고도 경건한 소통 방식 안에 숨겨져 있다.


국민장을 치른 현재 시점에서 성찰의 지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치적 원인과 의미가 아니라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민들의 시선이다. 다시 말해 앵글의 초점은 정치인 노무현의 파란만장한 삶이나 업적에 대한 재평가가 아니라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조문객들의 인식과 해석에 맞추어야 한다. 필자는 거기에 한국정치사를 관통하는 ‘비주류 서민대중 정치’의 도도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 서거, 그리고 비주류들의 상실감과 서러운 눈물


정치인으로서 노무현은 뼈 속까지 비주류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비주류란 중심이 아니거나 소수세력을 의미한다. 이 때 소수란 단순히 수적 개념이 아니라 여성이나 비정규직처럼 권력 관계에서 사회적 약자를 지칭한다.


길게 늘어진 추모 행렬 속에서 가장 짙은 서러움과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이들은 참여정부의 고위인사나 친노 정치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징글징글한 학력중심 사회에서 대학조차 못 나왔거나 서울의 명문대는 물론이고 지역 명문고 이름만 들어도 기가 죽어 내심 분노를 곰삭혔던 우리주변의 흔한 보통사람들이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나고 자란 상고 출신의 젊은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엘리트 여성 의원에게는 나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수치였을지 모르지만 평균 학력의 보통사람들에게는 내놓기에는 뭐하지만 가슴 한켠을 따듯하게 만든 은밀한 자부심의 근거였다. 더욱이 삼당합당 거부와 연이은 총선 패배에서 나타났듯이 그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주류와의 굴종적인 타협과 야합이 아니라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 쟁취해 낸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는 이 땅의 비주류들에게는 세속적 성공 모델을 넘어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삶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그의 서거를 남 몰래 슬퍼했을 두 번째 비주류는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아온 지방 사람들이다. 그의 균형발전전략에 대해 우파와 수도권 주민들은 행정수도 이전의 급진성과 무모함을 비난하였고 진보와 시민단체들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로 인한 지가 앙등과 개발주의적 속성을 비판하였다. 그렇지만 비판자 대부분은 지방이 아니라 서울특별시에 기반을 둔 특별한 시민과 중앙 언론들이었다. 지방 사람들 역시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깊은 애도에는 이 문제가 국가의 중장기 발전은 차지하고 당장 질식할 지경에 이른 지역 사정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의제였으며, 당분간 노무현만큼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응할 정치인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다.


두고두고 고민해야 할 세 번째 비주류는 여성이다. 이번 추모행렬에서 가장 눈에 띠는 그룹은 단연 이들이었다. 어디에서든 남학생보다는 여고생이 압도하였고, 어린 자녀를 둔 30-40대의 가족들 단위가 많았으며, 20대 직장여성에서부터 50대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검은 정장의 근조 리본이 5월의 서울 거리를 꽉 메웠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나타난 추모행렬이 분단시대의 영웅주의와 끝없는 성장주의를 추종하였던 남성성을 상징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그것은 탈냉전시대의 평화를 염원하였던 여성주의와 근접해 있다. 개인적 견해로는 여성들의 추모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육아와 보육을 포함한 여성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라기보다는 진정성을 추구하고 실천하였던 이상주의 정치인에 대한 여성 특유의 직관과 결국 권력으로부터 박해받고 죽음을 결단하였던 고독한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 자신들의 연민감과 일체감이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서민 이미지가 실체를 얻다: 봉하 마을에서의 풀뿌리 생활정치의 실험


5.23 서거 이후 추모열기에 대해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합의를 본 유일한 지점은 ‘서민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대통령 개인사와 가족사의 유력한 근거들이 있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현역의 육군병사로서 만기 제대한 빽 없는 서민의 아들이었다. 권양숙 여사 역시 민주화 이후 이화여대 출신이 아닌 최초의 영부인이었다. 정확하게 말해 그녀는 대학은 꿈도 못 꾼, 가난 탓에 졸업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여상을 자퇴하고 취업 할 수밖에 없었던 산업화 시대의 우리 어머니들이나 누이들의 아픈 경험을 똑같이 공유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극심한 분단 상황 속에서 잃고 남편을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잃은 권 여사의 삶은 대통령의 삶만큼이나 기구하였다. 보다 주목할 점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민 이미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의 교감 속에서 창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서민의 이미지는 두 가지의 장면을 통해 전파된다. 하나는 재래시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아주머니 상인들과의 악수나 눈물이고, 다른 하나는 농촌에서의 곁두리 동안에 농민들과 벽 없이 주고받는 막걸리이다. 필자가 생생하게 경험하였던 바로는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내내 현장정치를 강조하는 여러 참모들의 주문에 결벽증이다 싶을 정도로 이를 쇼라고 생각하며 한사코 마다하였다. 때로는 이를 근거로 보수신문들은 박정희의 현장정치와 노무현의 측근정치를 악의적으로 대조하기도 하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추모정국 동안에 무수히 보았던 서민적 풍모의 사진들은 집권 5년 동안 홍보를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남녘의 고향 땅 봉하 마을에서 1년 동안의 진솔한 삶의 기록들이었다. 그는 서민임을 과장되게 내세우기보다는 고향의 이웃이나 방문객들과 서민적 언어와 풍모로 자연스럽게 교감하였다. 서민성과 진정성의 만남이 인구 2백 명이 채 안 되는 시골 마을에 일주 일만에 무려 백만 명이 넘는 추모객들을 찾게 만들었던 원인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다.



비밀의 마지막 열쇠, 촛불과 인터넷을 만난 대중의 진화


여기에서 의문이 떠오른다. 그것은 왜 비주류 서민대중의 정서가 김대중이 아니라 노무현을 통해 분출되었느냐는 정당한 의문이다. 서거 소식을 접한 직후 김대중 전대통령이 “내 반쪽이 무너졌다”는 통탄은 진실을 담고 있다. 그들 모두 출신 배경이나 지향 가치를 볼 때 비주류 서민정치를 대변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다. 오히려 대중(大衆)은 표기상의 이유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전매 특허였다. 필자가 연구한 바로는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고 박현채 선생의 주도로 제시되었던 『대중경제론』은 당시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진보적 정책들을 체계적으로 망라한 역작이었다. 

대중이라는 의미는 그때나 지금이나 소수의 특권지배층ㆍ관료ㆍ엘리트에게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수탈당하는 피통치 계급을 지칭하였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그렇지만 김대중 시대의 대중은 시대적 제약 탓에 참여의 수단과 제 목소리를 갖지 못한 수동적 객체였다. 김대중은 『대중경제론』을 통하여 대중에게 참여와 연대의 가치를 부여하였지만 현실에서 대중은 변화를 추동하였던 적극적 주체라기보다는 정치의 대상이자 고객으로 인식되었다.

추모행렬 속의 대중은 더 이상 서구에서 나타난 산업화 시대의 ‘고립된 군중’이거나 권위주의 시대의 조작하기 쉬운 동원 대상도 아니다.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선 그들은 촛불을 들고 새로운 정치실험을 선도하였고, 인터넷이라는 소통 수단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확장하고 있다. 즉 노무현 시대를 경과하면서 대중의 본질은 변화하고 있다. 과거의 대중이 4년마다 돌아오는 선거권 말고는 다른 시민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소극적 유권자였다면 2009년의 추모행렬 속의 대중은 운동과 제도정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광장으로 뛰쳐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적극적 시민들이다.



2. 추모정국의 본질과 전망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정치인 노무현의 삶과 대통령 노무현의 업적 평가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비판과 규탄은 안팎에서 드세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진보진영과 야당, 즉 내부의 몇 가지 편향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추모 열기가 분출되면서 일각에서는 그동안 전임 대통령에게 근거 없는 과도한 비판을 쏟아 부었다는 이유로 진보 진영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에게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추모열기의 본질에 대한 자기중심적 해석이 낳은 소모적 반응이며 결과 역시 해악적이다. 500만 추모객의 애도는 욕망의 정치, 전문가ㆍ엘리트 정치, 권력정치, 상층계급(upper class) 편향의 정치가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가치의 정치를 추구하였던 인간 노무현에 대한 흠모이지 그의 업적과 성과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정치인 노무현으로서 삶은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의 수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과(過)는 공(功)보다 적지 않다. 그는 진정성을 갖고 비주류 서민대중 정치를 실현하고자 애썼지만 여러 이유에서 적지 않은 시도들이 좌절되거나 실패하였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객관적 시각에서의 역사적ㆍ정치적 평가이다. 또한, 지역주의 해소ㆍ언론개혁ㆍ균형발전ㆍ비전 2030 등 그가 끝내 못 이루었던 정책 의제를 여럿이 함께 발전적 대안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뉴민주당 플랜의 문제는 진보의 결여가 아닌 비주류 서민대중 정치로부터의 이탈이다.


현재의 국면에서 상주를 자임한 민주당의 역할은 막중하다. 공교롭게도 시기가 겹쳐 당의 현대화를 내건 뉴민주당 플랜에 대한 시비가 뜨겁다. 필자는 뉴민주당 플랜에 대한 비판의 초점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당내 개혁적 인사들과 진보 언론들은 그것이 1) 신진보주의 등 진보주의적 강령을 누락함으로써 중도 우파의 보수적 관점을 대변하고 있으며, 2) 신자유주의와 양극화에 대한 통렬한 인식과 극복 의지가 결여되었고, 3) 결국 한나라당과 전혀 차별성을 갖지 않는 폐기되어야 할 노선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지엽적이거나 부정확한 진단이다. 문제의 본질은 뉴민주당 플랜의 지향점과 기조가 당대의 역사적 과제와 정면으로 씨름하여왔던 ‘비주류 서민대중 정치’의 한국적 전통과 완전히 결별하였다는데 있다. 김대중의 비주류 서민대중 정치의 핵심은 재벌경제론에 맞선 민족경제론(중소기업과 농업의 병행발전)과 화해와 협력의 햇볕정책이었다. 노무현의 그것은 지역주의 철폐와 균형발전, 언론개혁 등 낡은 정치의 청산을 정면으로 겨냥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민주당은 현대화라는 목표 아래 기회ㆍ정의ㆍ공동체 등 3대 가치와 포용적 성장과 기회의 복지라는 발전 전략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현대화 프로젝트는 하나의 세련된 논리 체계일수는 있지만 비주류 서민 대중이 당면한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그리 효험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치, 전략, 정책 등은 관념적으로 도출된 구성물이지 우리의 교육문제, 부동산문제,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생태문제, 중소기업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관심의 결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외국교과서(제3의 길)를 수입하기보다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도전과 실험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보완하며, 한국병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를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 그것이 당과 정책의 진정한 현대화이다. 



개혁 對 실용 논쟁이 아닌 좌파 對 진보, 진보 對 진보의 경쟁이 필요하다


이제, 지난 몇 년 동안 정치변화의 동력으로 작동하여 온 것이 노동이나 사회운동과 같은 단일 노선과 조직의 지도력 발휘가 아니라 비주류 서민대중들의 정치적 선택이었음을 인정하자. 이심전심으로 이들이 움직일 때 정권교체도 가능하였고 광장의 촛불도 번져나갔다. 이들이 노선과 지도자를 잃고 동요할 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뉴타운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정치가 승승장구하였다. 무정형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나날이 보다 더 선명한 실체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앞으로도 한국정치의 향방을 결정지울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민주정부 하에서 정당과 지식인들은 진보의 적자(嫡子) 논쟁을 즐겨왔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과 세력들이 진보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파문당하거나 상처를 입고 대오에서 배제되었다. 가장 큰 외상을 입은 것은 정체성 정립에 실패하여 끝내 해체되었던 집권 여당(열린우리당)이었다. 본질적으로 중도개혁 정당의 정체성은 자기 스스로의 내부 규정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위상 및 관계 설정에 따라 규정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중도개혁이나 현대화와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비주류 서민대중 정당으로의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함으로써 더 이상 개혁 대 실용이라는 탈 맥락적ㆍ소모적 논쟁의 덫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당분간 진보라는 이념의 사용권을 좌파 정당과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자. 대신 민주당 또는 새로운 정치를 준비하는 세력들은 ‘비주류 서민대중’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과 인물의 배양에 주력하는 것이 백배는 생산적이다. 진보의 형성과 그 궁극적 소유권은 언어나 이론의 정치함이 아니라 실천의 결과 내면화되고 타자로부터 공식화되는 인정 투쟁의 결과 획득되어진다. 이제, 한국정치가 진보의 내용을 채우기 위한 실천적 경쟁과정으로 발전하고, 조직 노동에 기초한 좌파 정당과 비주류 서민대중 정당 사이의 진보 대 진보 또는 좌파 대 진보로 분화하고 때로 연대하는 선의의 경합과정으로 발전하기를 빈다.


이제, 비주류 서민대중 정치의 가치와 정책을 올바르게 실현하는 것은 산 자들의 몫이다. 그럴 때 노무현은 구시대의 막내가 아니라 새 시대의 장남으로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 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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