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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작성일시     |     2010-02-21 12:14:42   조회     |     3560
  제목   |     쟁점과 대안 <12호> 이 정도의 일에 판사회의라니?
 

이 정도의 일에 판사회의라니?
- 신영철 전원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윤리적 무능력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김 인 회

  지난 해 발생한 촛불재판의 배당과 재판과 관련한 신영철 전서울중앙지방법원장, 현대법관(이하에서는 신전원장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문제가 된 사건이 법원장 시절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고자 하는 판사들의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의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 윤리위원회의 결정 등을 보면 신전원장의 재판개입은 사실로 이미 확인되었다. 비록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너무 낮은 수준의 조치이기는 하지만 대법원장이 엄중 경고를 한 사실에서도 신전원장의 재판개입 사실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전원장은 재판개입 사태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사퇴를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취지다. 
  이에 전국의 법관들이 판사회의를 연일 벌이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신전원장의 책임있는 태도, 즉, 사퇴를 완곡하게 요구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남을 대 놓고 공격하기를 싫어하는 판사들의 개인적 성향상 좀처럼 보기 힘든 사태다. 개인적 성향을 넘어 법원의 위계질서, 관료주의적 성향을 고려할 때에도 예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사법파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의문 1 전국 판사회의를 할 만큼 이 사안은 중요한가?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이 문제가 전국의 판사들이 모여서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인가, 신전원장의 책임을 요구하는 판사회의가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Yes”이기도 하고 “No”이기도 하다.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보면 판사회의를 열어 전국의 판사들이 입장을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법원의 윤리적 자정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판사회의를 열 필요도 없이 훨씬 전에 해결되었어야 할 일이 진행되고 있다.
  먼저 이 사안이 전국의 판사들이 모두 의견을 표명할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에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신전원장이 개입한 사건은 단지 하나의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아마 가장 큰 근거일 것이다. 그리고 재판의 결과가 신전원장의 개입으로 결정되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점도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 사건이 확대되는 것은 결국 촛불집회에 대한 선호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엄격한 절차적 정당성, 공정성은 사법부의 생명

  사안의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법부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거의 절대적인 원칙을 침해한 신대법관의 행동은 마땅히 사퇴를 넘어 징계의 대상이 된다. 원래 법원은 매우 어려운 사건도 어떻게든 해결하는 곳이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 인생에는 승패가 없고 또 지금 이기는 것이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닐 수 있지만 법원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 결정은 당사자들의 수긍여부를 떠나 구속력을 갖는다. 하지만 사법부는 국민주권주의가 지배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로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데 국민적 정당성,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필연적인 한계를 갖는다. 그래서 사법부는 자신의 권한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권과 기본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상적 근거를 제시하고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재판이 벌어지기 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소극주의를 비롯하여 다양한 원칙들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사법부가 자신의 막강한 권한을 정당활 할 수 있는 근거 중의 하나가 엄격한 절차적 공정성이다. 사법부는 비록 민주적 정당성은 없지만 입법부나 행정부와 달리 어느 한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입장에서 양 당사자의 말을 충분히 듣고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와 내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법관은 자신이 판단해야 할 사안에 대하여 직업적인 중립성을 가지고 편견이나 예단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법관이 편견이나 예단을 갖지 않도록 주위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표현된 것이 바로 사법부의 독립이요, 개별 법관의 독립이다. 절차가 공정하지 못한 재판은 내용 역시 불공정한 것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서 사법부가 고문과 학대로 점철된 수사과정에 대해 귀를 막았던 국가보안법 사건이나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재판의 예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사법부의 독립과 개별 법관의 독립은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는 국가기구가 되기 위한 거의 절대적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법부의 독립이나 개별 법관의 독립 원칙이 절대적이고 모든 원리에 우선하는 최고의 원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더 중요한 다른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와 법관 역시 국민과 다른 기관으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하고 또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 한마디로 국민주권주의가 사법부에도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을 절대적인 원칙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만일 사법부의 독립이 절대적인 원칙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또 다른 법원의 조직이기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대법관의 행동은 사법부의 존립 이유를 침해한 행위

  이번 사태에서 엄격한 절차적 정당성, 공정성이라는 사법부 구성의 대원칙이 쉽게 묵살되었다. 그것도 사법부의 독립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지방법원장에 의해 말이다. 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고문을 받으면 모든 국민이 고문을 받을 가능성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이 곧 대한민국 인권의 붕괴를 의미하듯, 한 사건의 절차적 정당성이 붕괴되면 전체 사건의 절차적 정당성이 붕괴되고 그것이 곧 사법부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절차적 정당성이 상실된 재판이 어떻게 내용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법관은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듣고 법정에서 벌어진 공방에 기초하여 재판의 진행에 관한 절차적 사항과 사건의 승패에 관한 내용적 사항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이미 만천하에 공개하였다. 그런데 그 법관이 이미 자신의 상사로부터 일종의 지시를 받아 예단과 편견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지금 진행되는 재판은 법관이 당사자의 주장과 공방을 공평무사하게 경청하고 그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재판이 아니라 주문자의 주문에 의하여 판결문을 찍어내는 공장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의 판사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법관으로서 최소한의 직업윤리의 발동이다. 한 사건이 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확장되어 나갈 것임은 명백하다. 특히 국민의 인권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이지는 사건, 국론 분열 운운하면서 협박에 가까운 간섭이 진행되는 사건에서 재판에 대한 개입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이전과 같이 정보기관이나 정치권의 개입일 수도 있고 이번 사건처럼 법원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동료법관에 의하여 개입이 이루어 질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권리를 다루는 법관이라는 직업인이라면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점을 초기에 해결하고 원칙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개별 법관이나 사법부차원에서도 막기 힘들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우리 사법부의 역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찰제 판결”이라고 하여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요구하는 대로 판결을 하였던 부끄러운 과거를 망각하는 순간, 사법부는 순식간에 다른 기관과 같이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만 행사하는 기관이 될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법부는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지키지 못하고 정의를 선언하지 못하는 사법부가 그렇게 살아남아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촛불집회의 선호에 따라 이 사건이 확대된다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이것은 사법부 독립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정치적인 의도로 돌리는 음모론적 시각이고 조잡한 편가르기식 셈법이다. 초등학생도 하지 않는 논리이다. 여기에 대한 반박은 촛불집회에 대한 사회적 여론은 일방적이지 않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전국의 판사들이 거의 뜻을 같이 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일반인들보다 보수적인 판사들이 뜻을 같이하는 것이 촛불집회에 대해서일까, 아니면 사법부의 독립과 개별 법관의 독립일까?

의문 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사회의까지 개최해야 하는가?

  두 번째 문제는 법원의 윤리적 자정능력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는 판사회의까지를 개최할 필요없이 신전원장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수도 없이 많았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의 자체 조사, 대법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 대법원장의 결단 등 여러 계기가 있었고 이 계기마다 신전원장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기회가 있었다. 만일 위의 여러 계기 중에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살렸다면 전국의 판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이런 사태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누구의 눈에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전국의 판사들이 시간을 쪼개 모여서 의견을 표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든 것은 무엇이며 또 누구인가?

사법부의 윤리적 자정능력은 사법부를 지탱하는 또 다른 기둥

  사법부가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권력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다른 공직자에 비하여 훨씬 높은 직업윤리 때문이다. 사법부의 독립으로 표현되는 절차적 정당성이 개별 사건 및 눈에 보이는 원칙으로서 사법부 권한을 설명한다면 법관의 높은 윤리 의식은 법원 전체로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원칙으로서 사법부 권한을 설명해주는 요소이다.
  사법부가 다른 기관에 비하여 높은 수준의 윤리를 갖추어야 한다. 그 이유는 우선 입법부와 행정부 등 다른 기관은 국민들로부터 직접 선거를 통하여 통제를 받는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직접 선거를 통하여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윤리이다. 또한 사법부가 개별 재판을 통하여 선포하는 것은 해당 사건에서는 법률이 되고 법은 곧 정의를 의미하고 나아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윤리를 의미한다.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이 연구윤리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학자들 사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에서 법적으로 해결해달라고 하고, 의사가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냈을 때 결국 법원에서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듯, 현대 사회의 윤리는 곧 법률과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법원은 그 스스로 최고의 윤리수준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법률가는 법을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법부의 구성원이 다른 기관에 비하여 높은 수준의 윤리를 갖추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공적인 문제는 공적인 절차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마땅

  신전원장이 이러한 고도의 법관윤리 문제를 위반했다는 점은 명백하므로 이 문제에 관한 한 더 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즉, 신전원장의 사태에서 보듯이 윤리의 문제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사적인 문제는 사적인 절차를 통하여, 공적인 문제는 공적인 절차를 통하여 적정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공적인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것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도,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책임자도, 그리고 관심을 갖는 관계자도 모두 승복하지 못하는 해결책이다. 해악은 공적으로 발생시켜 놓고 개별적인 처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은 마치 공공의 적에 대하여 제발 당신이 알아서 어떻게든 해달라고 애원하는, 가장 낮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다치지 않는 해결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두를 다치게 하는 무책임한 처사일 뿐이다.
  윤리는 개별적인 의견이나 철학의 집합체가 아니다. 윤리란 사회생활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한 원칙을 말하며 자신의 직업을 다른 관계인들과 함께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지침이다. 직업윤리는 직업 수행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원칙을 포함한다. 공적인 문제는 공적인 절차를 거쳐서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를 덧붙이자면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판과 토론을 자유로워야 하고 여기에는 누구도 자격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정의인가 불의인가, 올바른 것인가 아닌가를 논의하는데에는 어떤 자격도 필요없다. 법관이 아니어도 법률가가 아니어도 이 정도의 문제는 충분히 논의할 수 있고 또 논의해야 한다.

공적인 절차를 거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

  이번 사태에서 신전원장은 단순히 개인적인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사법부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책임있는 기관에서 책임있는 처방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사건은 매우 간단 명료하다. 등장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고 등장인물이 조사에 비협조적인 것도 아니다. 행위 자체도 단순하다. 조사는 신속히 끝났고 책임소재도 명백하다. 남은 것은 결정뿐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속수무책, 시간끌기만으로 일관했다. 책임있는 처방을 하지 못한 것에 합리적인 이유라도 있으면 들어보고 싶다. 아마 유일한 설명은 신정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사법부 독립의 침해라는 것, 그리고 개인의 진퇴문제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지 않느냐는 정도이지 싶다. 만일 이 정도의 인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이것은 철저한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 침해된 것은 신전원장의 개인적 권리가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이요, 개별 법관의 독립이다. 결국 사법부의 본질이 침해된 것이다. 그런데 사법부의 본질을 침해한 행위와 당사자를 그대로 두는 것이, 그리고 그에 대한 처분을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것이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연구윤리를 위반한 황우석씨는 아무리 높고 국제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연구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황우석씨는 과학연구의 기초를 침해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법부의 기초를 침해한 자에 대해서는 마땅히 책임있는 기관에서 책임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윤리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판사회의가 열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대법원의 사건 처리과정에서 무능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판사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윤리위원회의 결정까지는 지켜보고 대법원에서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물론 결정과정까지 판사들이 활발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더라면 더욱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기대도 해보지만 기다려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사들의 기대를 깨끗하게 저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판사들의 행동뿐이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합당한 방안을 찾아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침해를 용납하는 것이요, 법관으로서의 직업윤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내고자 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법행정당국의 현실과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하는 일반 판사들의 노력이 부닥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모습이다.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가면서 보고있다. 신전원장의 재판개입 행위와 자신이 발생시킨 문제가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한 현재의 태도가 고위 법관의 평균적 인식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우리를 절망으로 이끈다. 앞으로도 사법부의 독립, 개별법관의 독립과 관련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당연히 따른다. 이번 문제를 공적인 절차를 통하여 응당의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동일한 문제가 계속 재발할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또 우리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문제제기와 함께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법관들, 이 문제가 일부 고위 법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법관의 문제이며 나아가 사법부의 독립과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는 사법부의 역할에 대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판사회의까지 열면서 공정한 해결을 요구하는 법관들을 보면서 희망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정상적인 법관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므로 이것을 두고 칭찬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리 국민들도 법관에 대해서 이 정도는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권한이 큰 만큼 책임도 큰 것이 세상 이치다.
  희망과 절망의 이중주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결될지 아니면 갈등과 불신 속에 문제가 미해결로 남을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관점을 채택한다면 사법부의 독립, 개별법관의 독립을 지키고 사법부의 본연의 임무를 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이다. 이 원칙은 신전원장에게도 적용된다. 신전원장이 공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매우 간단하고 명백한 사건이다. 빨리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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